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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ther Way of Talking (말하기의 다른 방법)


Date : 2007/01/10 10:16   Category :

제목 : 말하기의 다른방법 (Another Way of Talking), 눈빛시각예술선서7
저자 : 존 버거, 쟝 모르 (John Berger & Jean Mohr)
번역 : 이희재

이 책은 유럽 산간 지방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portrait 를 주로 촬영하고 책으로 출판하고 있는 존 버거 와 쟝모르의 네번째 책이다.
이 책에서 이들은 그동안 촬영한 사진을 소개하고, 사진이 주는 의미와 느낌을 보고 해석하는 방법에 대해서 다양한 사람들의 시각으로 조명하였다.
저자는 이를 통해서 사진의 모호성을 전달하고자 한다.


사진은 사실의 단면이냐, 아니냐?

사진은 우리에게 두가지 메시지를 전달한다. 하나는 사진 찍은 사건에 대한 메시지, 다른 하나는 불연속성의 충격을 전하는 메시지.
기록의 순간과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순간 사이에는 심연이 가로 놓여 있다.
두번째 메시지에 대해서 우리는 평소에 사진의 피사체를 알고 있고, 그 피사체가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던지 하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고는 잘 인식하질 못한다.
그래서 사진은 추억이나 유품보다 더 사람에게 정신적 외상을 입힌다.

사진의 모호성이라는 것은 이 사진의 두번째 메시지인 불연속성에서 생겨난다.
기억된 이미지는 연속된 경험의 잔재인데 반해, 사진은 어떤 단절된 순간의 모습을 그대로 인용해 오는 것이다.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라는 것은 순간적인 것이 아니다. 의미는 연결하는 데서 발견되며 전개없이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 줄거리 없이, 펴쳐짐 없이 의미란 있을 수 없다. 사실과 정보는 결코 의미를 이루지 못한다.
우리가 사진에서 의미를 찾아 낼 때 우리는 이미 그 위에 과거와 현재를 덧붙이고 있는 것이다.

전문 사진가들은 사진을 찍을 때 대중이 '적절한'과거와 미래를 덧붙이게 할 수 있을 만큼 설득력 있는 순간을 고르려고 애쓴다. 사진가의 지성 혹은 그가 주제와 나누는 교감이 이때 어떤 것이 적절한지 결정한다.
사진가는 한장의 사진에서 '단 한번의 구성적인 선택'으로 사진 찍을 순간을 선택한다. 다른 표현수단에 비해 사진은 지향성이라는 면에서 약하다.
극적인 사진도 극적이지 않은 사진만큼이나 애매모호하다.

여기서 사진과 글의 관계가 나타난다.
사진은 해석을 요구하고 글은 그것을 제공한다. 사진은 증거로선 더할나위없이 강력하지만 의미가 약하기 때문에 글의 도움을 빌리게 된다. 본질적으로 일반화의 차원에 머물러 있는 글은 반박하기 어려운 사진의 생생함 덕분에 구체적 신빙성을 얻는다. 이 둘이 합쳐지면 아주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해석없는 모호한 사진이 주는 메시지 또한 나름대로 좋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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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는 사진에 관한 글에서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약호(code)'없는 메시지와 대면하였다. 사진은 거대한 이미지군 중의 가장 최후의 (개량된) 이름은 아니며, 정보경제학의 결정적인 돌연변이에 해당한다"라고 썼다. 독자적인 언어를 갖지 않으면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곧 돌연변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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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습의 수수께끼

모습은 응집한다.
모습은 사건을 구분짓고 동시에 거기에 가담한다.
모습은 마음속에서 지각 내용으로서 응집한다.
우리가 그 모습이 응집되었다고 말하는 순간 이 응집성은 언어의 그것과 다르지 않은 통합성을 내보인다.

보는 것과 생명은 모두 빛에 의존하며 모습은 이런 상호관게의 얼굴이다. 따라서 모습은 이중으로 체계화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먼저 그것은 어떤 보편적인 구조역학적 법칙의 규제를 받아 그렇게 존재하는 자연의 친화계에 속해 있다. 둘째로 그것은 마음의 시각 경험을 구조화하는 지각계에 속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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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대한 실증주의적인 관점은 그것이 부적당함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지배적인 위치를 누려왔다. 모습이 갖는 계시적인 성격을 받아 들이지 않는 한 사진에 관한 어떤 다른 견해란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뛰어난 사진가는 모두 직관의 힘으로 일했다. 이론의 결여는 그들의 작업에서 대수로운 게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사진의 가능성이 이론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모든 의미심장한 사진 속에서, 오래 인용하는 사진속에서, 특수한 것은 일반관념의 매개를 통해 '보편적인 것과 동일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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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모습에서 인용해 온다. 그런 인용은 불연속성을 낳는데, 그 불연속성은 사진의 의미상의 모호성에 반영되어 있다. 사진으로 찍힌 모든 사건은 그 사건의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 있어 잃어버린 연속성을 자신의 삶에서 찾아 낼 수있는 사람람을 제외하곤 누구에게나 모호하게 나타난다. 대개 공적인 사진의 모호성은 사진진에 담긴 사건을 많건 적건 진실된 것으로 설명하는 글 때문에 가려진다.

의미심장한 사진은 모습에서 길게 인용해 온다. 여기서 말하는 길이는 시간이 아니라 의미의 확대를 뜻한다. 그러한 확대는 사진의 불연속성을 활용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서술은 깨진다 (만약 그가 기차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할때 우리는 왜 그 젊은이가 졸면서 기차를 기다리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똑같은 불연속성이 모습의 순간적인 일련의 모습들을 보존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동시적인 응집성을 찾아낼 수 있도록 해 준다. 서술하는 대신 관념을 촉발시키는 응집성이다. 모습이 이런 응집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그것이 언어에 근접한 어떤 것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반언어라고 지칭했다.

모습이라는 반언어는 끊임없이 더 깊은 의미에 대한 기대를 불러 일으킨다 우리는 눈으로 계시를 찾는다. 실생활에서 이런 기대는 별로 충족되는 법이 없다. 사진은 이런 기대를 확증시키는데, 그것은 공유될 수 있는 확증이다(우리가 케르테츠의 사진들을 함께 읽었듯이). 표현적인 사진에서 모습은 신탁의 특성을 잃고 설명적이 된다.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바로 이런 확증이다.

사진 찍히는 사건이나 관념의 명쾌성은 제쳐 놓고라도, 우리는 바라보고자 하는 의지에 내재된 어떤 기대를 사진이 충족시켜 주기 때문에 감동한다. 카메라는 모습의 반언어를 완성하고 뚜렷한 의미를 제시한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 우리는 마치 모국어의 품안에 있듯 모습들 가운데 어느 듯 편안히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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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는 삼자가 존재 하는 것 같다.
사진을 촬영하는 이, 보고 해석하고 감상하는 이, 그리고 사진에 담겨져 있는 피사체이다.
사진이 가지는 의미라고 하는 것은 이들 삼자간의 상호연관성을 통해서 형성 되는 것 같으며, 사진을 보고 해석하는 데는, 사진을 감상하는 이의 경험이 많이 반영되고, 사진의 프레이밍과 구도에는 사진을 촬영하는 이의 의도가 많이 반영이 되는 것 같다.

우리가 아무리 사진을 섬세하게 보고 촬영을 해도 실제적으로 담아내는 피사체에는 우리가 의도하는 바만 담기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사진 자체가 순수하게 사진 작가의 의도대로 창조되었다고 보기 힘들 듯 하다.

사진을 찍을 때는 왜 이것만 담는가를 고민해 봐야 할것 같고, 사진을 보고 감상할 때는 왜 이것들은 배제 되었을 까 하는 것을 고민해 봐야 할 듯 하다.
사진의 의미라는 것은 결국은 자신의 경험의 연속선상에서 결정이 되는 듯 하다.

사진이 어느 시간과 연속선상에 있는 사건의 한 단면이라는 사실에는 異見이 없을 듯 하다.
그러나 그 한 단면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항상 고려해야 할 듯 하다.
왜 이 부분인가 하는 것은 작가의 의도와 경험에서 결정된 것이 아닐까?

사진의 불확실성, image 가 주는 모호성...
이것이 사진이 보여주는 예술적 감성이 아닐까...


2007년 정월
視畵/정재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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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10 10:16 2007/01/10 10:16
Posted by 視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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