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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tedrala sv. Vita


Date : 2006/05/29 10:54   Category :
여행/동유럽

! 성비타 대성당

비트 대성당은 프라하 성의 심장부에 위치해 있는 체코 캐톨릭교회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까렐4세가 체코의 왕으로 등극하기 2년전인 1344년에 건축되기 시작했는데 프라하가 대주교청의 소재지로 승격된 것을 기념하고 그에 걸맞는 대성당에 대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고딕시대의 작품이기 때문에 하늘을 찌르는 수많은 첨탑들이 장식되어 있고 뾰족아치모양의 문과 창문들을 볼 수 있다. 성당의 가장 높은 지점은 지상으로 부터 96미터. 프라하성의 정문이나 북문쪽에서 들어가면 성당의 정문이 있는 서쪽부분을 보게되는데 두개의 큰 첨탑이 세워져 있는 이 부분은 비트 성당에서는 나중에 만들어진 부분인 19세기와 20세기의 작품이다. 성당이 완공된 것이 1929년인데 이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지금의 대 성당이 세워지기 전, 그자리에는 바쯜라프공(후에 성인이 되어 성 바쯜라프라고 불리는)이 세운 성 비트 로툰다가 세워져 있었다. 바쯜라프공이 동생 볼레슬라브에 의해 살해된 후 그의 시신은 이 성 비트로툰다의 측랑부분에 안치되었는데 그 해가 929년이다. 즉 비트 대성당은 성 바쯜라프의 죽음 이후 1000년이 되는 밀레니엄을 기념하여 완공된 것이다. 하지만 후에 이루어진 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바쯜라프의 죽음은 929년이 아닌 935년이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성 비트성당 역시 제단은 정 동쪽에 위치한다. 성지 예루살렘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성당의 제단은 항상 동쪽이다. 건축가 '아라스의 마띠아쉬'에 의해 이 동쪽 제단이 있는 곳 부터 시작되었던 성당공사는 그의 사후(1352년) 약간의 공백기를 지나 새로운 건축가의 손에 넘겨지게 되는데 그가 바로 까렐4세 시대의 궁정 건축가로 이름을 날렸던 뻬뜨르 빠를레르쥬이다. 당시 그의 나이 23세. 이 약관의 젊은이도 상당한 재능을 가진 인물이었겠지만 이 젊은 건축가를 거대한 성당 건축의 책임자로 발탁한 까렐4세의 결단력도 대단하다. 뻬뜨르 빠르레르쥬의 손에 의해 성당은 점차 모습을 갖추어 나갔다. 제단이 있는 동쪽에서 부터 남쪽 큰 탑까지, 그러니까 현재 볼 수 있는 성당의 뒷쪽 반이 이 때 완성되었다. 성당의 내부는 지금도 일반인들에게 부분적으로 개방되어 있는데 성당의 중간 부분부터 표를 받고 들여보내준다. 그곳 부터가 바로 아라스의 마띠아쉬와 뻬뜨르 빠를레르쥬가 만든 옛날 부분이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에도 성당의 공사가 조금 진척되긴 했지만 본격적인 성당의 증축이 이루어진 것은 19세기의 일이고 위에서 말한 것 처럼 1929년에 비로소 현재의 성당이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성당의 내부를 둘러보기 전, 먼저 들어가는 입구에서 본 바깥 부분을 먼저 살펴보는 게 좋겠다. 2궁정을 지나 성당 앞으로 나오면 먼저 성당의 거대함과 높이에 압도 당하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가장 먼저 봐야 할 것은 입구의 윗쪽에 있는 커다란 동그라미 (직경 10.4미터)로제타창. 고딕성당의 특징인 로제타창은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 창이지만 바깥쪽에서는 그 화려한 색채가 보이진 않는다. 창의 양 옆에는 두개의 성인상이 있는데 보기에 왼쪽에 있는 것이 성 비트, 오른편에 있는것이 성 바쯜라프다. 로제타 창의 아랫쪽 테두리 5시 방향과 7시 방향에는 각각 두사람씩 네사람의 흉상이 살짝 들어가 있는것을 볼 수 있는데 양복을 입고있는 이 네 사람은 19세기와 20세기에 성당을 건축했던 건축가들이다. 그 아래에 건물의 바깥쪽으로 입을 벌린채 불쑥불쑥 튀어나온 괴물 조각들은 빗물을 건물 밖으로 배출하기 위한 낙수홈들.

성당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풍성한 조각들로 장식되어 있다. 육중한 청동문들은 성당의 건축과정을 보여주는 부조로 장식되어 있고 큰 그림들 옆에는 왕이나 고위 성직자, 건축가들의 얼굴들이 조각되어 있다.

!! 성당의 내부

성당의 내부로 들어가는 순간 그 웅장함에 다시한 번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19세기와20세기의 건축가들이 14세기에 만들어진 성당의 옛 부분과 같은 고딕스타일로 성당을 증축했기 때문에 건물이 그토록 오랜 시간적 격차를 두고 세워졌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힘들다. 높이 솟아있는 본당의 내부 높이는 33미터, 그물모양으로 얽힌 지붕의 뼈대가 자연스럽게 기둥으로 이어져 흘러내려오는 것은 단순히 장식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고딕시대에 유용하게 사용되었던 건축역학의 기술이다. 천정의 하중을 기둥으로 분산시키는 이러한 기술과 건물 외부에 설치한 벽날개 시스템을 이용하여 고딕시대에는 이처럼 웅장하고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있었다. 성당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많은 것들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스테인드 글라스다. 오색찬란란 스테인드 글라스를 거쳐 들어오는 신비한 빛에 누구나 한동안을 넋을 잃게 된다. 성당을 들어가면 벽면을 따라 이어져 있는 채플을 볼 수 있는데 이 채플들 창문마다 스테인드 글라스가 장식되어 있는 것이다. 가장 유명하고 특이한 작품은 '신 대주교 채플'을 장식하고 있는 알폰스 무하의 작품. 이 작품은 성 찌릴과 성 메토디우스라는 두 형제 선교사의 업적과 슬라브 민족을 축복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제일 꼭대기에 묘사되어 있는 사람이 예수그리스도, 그 아래에 있는 세명의 여성은 각각슬라브 민족을 상징한다. 창문의 오른쪽에는 성 찌릴(콘스탄틴)이 그의 동생 메토디우스와 함께 대 모라비아제국에서 선교하는 장면과 로마에서의 그의 죽음이 묘사되어 있고 왼편에는 메토디우스가 슬라브인들의 언어로 설교하는 장면, 그의 반대자들에 의해 옥에 갇히는 장면, 그리고 모라비아로 돌아와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가운데 그림은 두 선교사들로부터 세례를 받는 보헤미아의 제후 보르지보이 그리고 할머니 루드밀라의 무릎에서 기도하고 있는 소년 바쯜라프이다.

성당의 중앙으로 와서 뒤를 돌아보면 로제타창을 볼 수 있다. 1920년 안또닌 뽀들라하에 의해 제작된 이 작품은 27000개의 유리조각으로 천지창조의 하루하루를 묘사하고 있다. 창문을 가까이에서 볼 수 없기 때문에 작가가 어떤 모습으로 천지창조의 하루하루를 묘사했는지 확인할 수 없는게 조금 안타깝긴 하지만 그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빛이 창을 통해 은은히 비쳐 들어오는 모습만으로도 작품이 주는 감동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성당 내부 바닥은 십자가 모양을 하고 있다. 제단이 있는 동쪽과 입구와 로제타창이 있는 서쪽을 긴 축으로 하고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되어 있는 하모니움의 북쪽, 그리고 왕들의 출입구였던 황금문의 서쪽을 짧은 축으로 하여 십자가 모양을 이루는 성당에는 또한 각 꼭지점 마다 가장 중요한 성인들의 유해를 안치되어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동쪽끝에는 성 비트 성인, 북쪽에는 성 지그문트, 남쪽에 성 바쯜라프, 그리고 원래 서쪽에는 성 보이뗴흐 (성 아달베르트)의 유해가 있는데 단, 성 보이뗴흐의 유해만은 성당의 증축과정에서 동남쪽 채플로 옮겨져 있고 원래 유해가 있던 자리는 다른 부분보다 높게 상승시킨 바닥으로 옛 흔적을 남겨놓고 있다. 성당 내부의 큰 기둥들에 이들 성인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들은 위에 말한 네사람의 성인들 외에 성 루드밀라, 성 노르베르뜨, 성 프로코피우스, 성 얀 네뽀무쯔끼의 네사람으로 여덟명 모두가 체코 수호성인들이다.

입장권을 보여주고 들어가면 성 지그문트의 채플 앞에 서게된다. 채플을 등지고 서면 대리석 무덤을 볼 수 있는데 이 무덤은 합스부르크가의 페르디난트 1세와 그의 아내 안나, 아들 막시밀리안 2세의 것이다. 그 아래쪽 지하에도 왕들의 무덤이 있는데 동서남북으로 배치된 성인들의 묘를 각 끝으로 하는 십자가를 그었을때 그 교차점이 되는 지점에 왕들의 묘가 있다는 사실은 동 서양을 막론하고 묘자리에 꽤나 신경들을 썼다는 것을 알려준다. 지그문트 채플 옆에는 구 성물실이 있고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성 안나의 채플이다. 채플의 맞은편에 1630년에 제작된 목판 부조가 있는데 이 작품은 1620년에 있었던 백산전투 이후 승리한 캐톨릭 군대가 프라하로 들어오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당시의 프라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있는 이 목판부조를 보면 지금의 까렐다리와 비트성당, 구시청사탑과 틴성당이 옛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목판화 옆에 세워져 있는 슈바젠베르그 추기경 동상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성 비트의 제단을 볼 수 있다. 바로 이 성당의 이름이기도 한 성 비트는 4세기경에 살았던 이탈리아 사람이고 자신의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한 후 성인이 된 분이다. 춤추는 무희들의 수호성인이자 까렐다리의 수호성인이기도 한 성 비트의 작은 조각상이 제단위에 세워져 있는데 성비트의 축일에 해가 질때 바로 이 조각상의 그림자를 쭉 이어보면 현재의 까렐다리 동쪽 교탑과 만난다. 유디틴다리가 유실된 후 까렐다리를 새로 건축할때 동쪽편 교탑의 자리를 약간 남쪽으로 내려 현재의 위치에 세운 이유는 바로 이 그림자가 마치 성 비트 성인이 손을 내민 것 처럼 다리의 보호해 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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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29 10:54 2006/05/29 10:54
Posted by 視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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